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루이스 캐럴 (문단 편집) == 소설가로서 == 대표작으로는 1865년 출판된 '''[[이상한 나라의 앨리스]]'''[* 1862년 Liddel 가족과 함께 뱃놀이 소풍을 갔는데, 세 딸들이 캐럴에게 이야기를 해달라고 졸라서 만들어냈던 이야기가 '이상한 나라의 앨리스'의 바탕이 되었다고 전해진다. 이 뱃놀이 에피소드는 [[자크 리베트]]의 영화 셀린느과 줄리 배타러 가다에 영감을 줬다.]와 그 후속작인 1872년 출판된 '''[[거울 나라의 앨리스]]'''[*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에 비해 전반적인 분위기가 확실히 어둡고 철학적인데, 일반적으로 1868년 부친상을 겪으며 깊은 고뇌를 했던 것을 그 주된 원인으로 추정한다. 사제였던 캐럴의 아버지는 캐럴에게 신앙 뿐 아니라 전반적인 사상과 신념에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었다.]가 있다. 이 작품이 사회 전반에 끼친 영향은 실로 대단했다. 앨리스 마니아가 없는 분야가 없을 정도여서, [[철학자]], [[수학자]], [[물리학자]], [[심리학자]]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. 특히 물리학에서는 [[빅뱅 우주론]], [[카오스 이론]], [[상대성 이론]], [[양자역학]] 등을 설명할 때 약방의 감초처럼 인용된다. [[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증후군]]이라는 질병도 있을 정도. 그 외에도 장편시인 [[스나크 사냥]]과 장편동화인 '실비와 브루노'를 썼으며, 몇몇 수학에 관련한 책과 논문을 썼다. [[빅토리아 여왕]]이 [[앨리스#s-2|앨리스]] 이야기를 재미있게 읽고 그가 쓴 책을 모두 읽고 싶다는 편지를 보냈다가, 수학책과 수학 논문들을 받고 당황했다는 일화도 있다. 세상을 바꿨다는 건 사실로, 그의 대표작인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현 시대에 창작된 작품에도 모티브로 쓰인다. 문화계 전체에 캐럴의 손이 닿아 있으며, 많은 작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다. 앨리스라는 이름만 들어도 누구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연상할 정도로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. 그 외에 '''[[언어유희]]'''를 잘 사용하는 걸로도 유명하며, [[셰익스피어]]처럼 이 사람이 현대 영어에 추가한 신조어가 꽤나 된다. ([[재버워키]] 항목을 참고하자.) 영문학계에서 그를 높게 평가하는 이유가 다 있다.[* 반대로 번역가들에게는 극악의 난이도를 자랑한다. 영어로만 성립 가능한 문장이나 단어가 튀어나오기 때문. 때문이 캐럴 소설이나 시는 번역가마다 결과물이 다른 걸로 유명하다.] 그러나 앨리스 이후 작품들은 [[패러독스]]적인 면이 전혀 없고 감상적이어서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. 대표적인 예가 장편동화 <실비와 브루노>인데, 내용은 엄청나게 방대한데 구성, 캐릭터성은 별로여서 앨리스 2부작에 비해 관심을 별로 받지 못한다. 초현실주의나 1960년대 [[사이키델릭]] 문화도 캐럴에게 많이 빚지고 있다. 앨리스에 등장하는 흰토끼는 [[제퍼슨 에어플레인]]의 노래로 재탄생해 [[사이키델릭 록]] 걸작으로 꼽힌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